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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學報』 투고요령

제정 1998. 12. 12.
제8차 개정 2015. 04. 24.
제9차 개정 2019. 12. 14.


I. 일반원칙

1. 『歷史學報』(이하 학보라 약칭함)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이론, 고고학, 미술사, 과학사 등을 망라하여 역사학 관련 논문을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인접 학문 분야의 논문도 게재할 수 있다.

2. 학보에 논문게재를 희망하는 사람은 학보의 원고작성 요령에 맞추어 글로 작성된 논문 파일(참고문헌, 외국어초록[영문 기준 원고지 5매 이내], 주제어 5~7개 포함)을 학회에 제출해야 한다. 투고된 원고는 일체 반환하지 않는다.

3. 원고분량은 논문의 경우 200자 원고지 150매 이내를 원칙으로 하며, 비평논문과 논단의 경우 100매 내외, 그리고 서평의 경우에는 30매를 기준으로 한다.

4. 투고 논문의 목차는 머리말(혹은 서론, 서언 등)과 맺음말(혹은 결론)을 포함하여 로마자(Ⅰ, Ⅱ, Ⅲ……)로 표기함을 원칙으로 한다.

5. 공동저자일 경우, 제1저자와 구분해서 표기하도록 한다.

6. 논문의 투고는 해당간기에 대해서 2개월 전까지 접수받고, 심사가 1개월 전에 완료된 것에 한해서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7. 학보에는 원칙적으로 회원만이 투고할 수 있다. 단, 비회원인 경우 가입 후 투고 가능하다.

8. 논문 제출 시 역사학회 온라인 논문투고관리시스템(JAMS2.0)을 통해 논문유사도를 검사하고 그 결과를 업로드해야 한다.


Ⅱ. 脚註 표기방식

1. 東아시아 語로 된 논문은 「 」(반각) 안에, 단행본은 『 』(반각) 안에 제목을 넣고, 논문과 서명사이에 쉼표는 생략한다. 인용논문과 각주의 끝은 마침표로 표시한다.

  • → 노중국, 「삼국의 통치체제」 『한국사』 3(서울, 한길사, 1994), 456쪽.

2. 西洋語로 된 논문은 “ ” 안에 제목을 쓰고, 단행본은 書名을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논문과 서명사이에는 반드시 쉼표로 구분한다. 서명과 권수 사이도 쉼표로 구분해 준다.

  • → Lee, Hai-soon, “Sijo Revival”,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3, (Seoul, Institute of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1990).

3. 모든 서명은 다음의 일반적인 예에 따라 표기하며, 편저물 ․ 번역본 ․ 한적본 등의 특수한 경우는 이하의 항목에서 별도로 규정하는 예를 따른다. 또한 발행지에 대한 지역 정보를 부기한다. 단, 국내도서로서 서울에서 발행된 책에 한해서는 필자의 편의에 따라 생략할 수 있다.

  • ◎ 일반적인 표기순서
    • ․ 동양서: 저자, 「논문명」 『서명』(간행지역, 출판사, 연도), 쪽수.
    • ․ 서양서: 저자, “논문명”, 서명 (간행지역, 출판사, 연도), 쪽수.
  • (1) 일반단행본
    • → 한영우, 『한국민족주의역사학』(서울, 일조각, 1994), 35쪽.
    • → 小林 多加士, 『海のアジア史-諸文明の󰡐世界=經濟󰡑』(東京, 藤原書店, 1997), p.456.
    • → Benjamin I. Schwarz, The World of Thought in Ancient China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1985), pp.456~460, p.506.
  • (2) 단행본 내의 논문
    • → 노중국, 「삼국의 통치체제」 『한국사』 3(서울, 한길사, 1994), 456쪽.
    • → Jing-shen Tao, “Struggles for Legitimacy”, Two Sons of Heaven (Arizona, The University of Arizona Press, 1988).
  • (3) 정기간행물
    • → 김기섭, 「신라 촌락문서에 보이는 ‘村’의 입지와 개간 」 『역사와 경계』 42(부산, 부산경남사학회, 2002. 3.), 49~74쪽.
    • → 채미하, 「신라 종묘제의 수용과 그 의미」 『역사학보』 176(서울, 역사학회, 2002), 45~56쪽.
    • → 田村實造, 「均田法の系譜―均田法と計口受田制との關係―」 『史林』 45-6(京都, 史學硏究會, 1962), p.23.
    • → Lee, Hai-soon, “Sijo Revival”,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3 (Seoul, Institute of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1990), pp.89~94.

4. 同一 著者의 책이나 논문, 혹은 그 외의 범주에 해당하는 글이 두 번 이상 인용될 경우, 바로 위의 것은 '같은 책' 또는 '같은 논문' 또는 '같은 글(또는 Ibid.)' 등으로, 바로 위는 아니지만 이미 앞에서 인용된 것은 '앞 책' 또는 '앞 논문', 또는 '앞 글(또는 op. cit.)'등으로 표시한다. 재인용시 구분히 필요한 사항은 표기해 주고, 특별히 구분을 요하지 않은 서지사항은 생략가능하다.

5. 同一 著者의 논문이나 책이 둘 이상 인용될 경우, 필자의 편의에 따라 먼저 인용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略稱을 미리 표기할 수 있다.

  • → 『중국대학문화연구』(이하는 『대학문화』)

6. 인용서적이 편저일 경우, 編者의 이름 끝에 ‘編(또는 ed.)’을 기입한다. 편저물 속의 논문을 인용할 때는 서양서와 동양서를 구분해서 표기한다. 서양서는 편자를 밝혀주고, 동양서는 편저자를 생략하여 해당 논문의 저자만을 표기한다.

  • (1) 편저물
    • → 서울대 동양사학연구실 편, 『강좌중국사』Ⅰ(지식산업사, 1994).
    • → 배영수 편, 『서양사강의』(한울아카데미, 1992).
    • → Wing-Tsit Chan, ed., Chu Hsi and Neo-Confucianism (Hawaii,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6).
  • (2) 편저물 속의 논문
    • ① 동양서
      → 이성규,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 『강좌중국사』 Ⅰ(지식산업사, 1994).
      → 장동표, 「지역사학회의 발전방향과 지방사연구」 『역사와 경계』 42(부산, 부산경남사학회, 2002. 3.).
    • ② 서양서
      → Joseph F. Fletcher, “China and Central Asia”, Fairbank, ed., Chinese World Order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1953), pp.210~214.

7. 漢籍本 인용의 경우, 가장 큰 책의 범주는 『 』로 묶고, 하위는 「 」를 쓰되, 다시 나뉠 경우, 중간점(․)을 사용하여 구분한다. 서지사항 표기는 위의 일반적인 표기법을 따라 판본을 밝혀 준다. 단, 판본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일반적인 經書나 史料일 경우, 서명과 편명만을 기록할 수 있다.

  • (1) 판본을 밝혀줄 경우
    → 康廣仁, 「報易一盡」 『戊戊六君子集』X期(上海, 近代史資料集刊, 1992), p.32.
    → 魏源, 「外藩․乾隆戡定回疆記」 『聖武記』 卷4(北京, 中華書局, 1984), pp.34~45.
    → 一然, 『三國遺事』(瑞文文化社, 1996), 132쪽.
  • (2) 일반적인 경서나 사료일 경우
    → 『論語』 卷1, 學而.
    → 『英祖實錄』 卷51, 英祖 16年 6月 3日 壬申.
    → 『高麗史』 卷71, 志25, 樂, 俗樂, 翰林別曲.

8. 번역본의 경우, 번역된 현재의 서지사항을 표기한다. 단, 필자의 필요에 따라 원전의 서지사항을 밝혀 줄 수 있다.

  • (1) 일반적인 표기
    → 蔣伯潛․蔣祖怡 共著/최석기․강정화 공역, 『유교경전과 경학』(경인문화사, 2002).
    → 鹽野七生/김석희 역, 『르네상스의 여인』(한길사, 1996), 56~70쪽.
    → 一然/이재호 역, 『三國遺事』(솔, 1997), 124쪽.
  • (2) 원전의 서지사항을 밝혀 줄 경우 콜론( : )을 사용한다.
    → E. J. Hobsbawm/강명세 역,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작과 비평사, 1994): E. J. Hobsbawm, Nation and Nationalism since 1780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9. 각주 내에서 서명을 인용할 경우, 인용대상을 제외한 부수적인 서지사항은 모두 괄호로 묶어서 처리한다. 불필요한 서지사항은 괄호 안에서 생략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견해로는 田村實造(「均田制の系譜-均田法と計口受田との關係」 『史林』 45-6, 1962)와 王仲(「北魏初期社會性質與拓跋宏的均田」 『文史哲』1955-10) 등이다.

10. 각주 내에서 괄호안에 참고문헌을 달 경우는 해당 문장에 국한되는 경우에만 하고, 각주 전체의 내용일 경우 괄호를 묶지 않는다.
→ 13세기 몽고인 들도 라시드 앗 딘의 『集史』(金浩東 역주, 『부족지』, 사계절, 2002, 252~253쪽)에서 그 祖上에 대해 鮮卑拓跋部가 森林속에서 살았던 것( 『魏書』卷1, 序紀)과 유사한 回想을 하고 있다. 朱學淵, 「鮮卑民族及其語言線索」 『文史』 54, pp.101~102.

11. 같은 논문이 여러 차례 간행되었을 때 필자가 구분을 원할 경우, 콜론( : )을 사용해서 표기할 수 있다.
→ 이기백, 「민족문화의 전통과 계승」 『이대학보』(이대사학회, 1958. 11.): 『민족과 역사』(서울, 일조각, 1971, 新版 1995), 45쪽.

12. 여러 논문을 연속해서 인용할 경우, 세미콜론( ; )을 사용해서 표기한다.
→ 고병익, 「전통의 의미」 『동아사의 전통』(일조각, 1976), 조지훈, 「전통의 현대적 의미」 『한국문화사서설』(탐구신서, 1964); 박종홍, 「문화의 전승․섭취․창조」 『사상계』 63(1958. 10.)

13. 각주 속에서 인용문을 제시할 경우, 인용문을 겹따옴표(“ ”)로 묶어주고, 전거는 그 뒤에 부기한다.
→ 󰡒齊朝一士大夫 嘗謂吾曰 󰡐我有一兒 年已十七 頗曉書疏 敎其鮮卑語及琵琶 稍欲通解 以此伏事公卿 無不寵愛 亦要事也󰡑 吾時俛而不答. 異哉 此人之敎子也! 若由此業 自致卿相 亦不願汝曹爲之.󰡓 「敎子2」 『顔氏家訓』卷1(北京, 中華書局, 1993), p.21.

14. 신문과 같은 일간지는 연․월․일을 표기하되, 마침표( . )를 이용하여 구분한다.
→ 강만길, 「휴전선에 통일연구소를……」 『한겨레신문』(한겨레신문사, 2001. 1. 21.), 2면.

15. 문장이나 단어 등을 생략 혹은 줄일 경우는 말줄임표(……)를 이용해서 표시한다.

16. 각주에서 자신의 논문을 인용할 경우, 󰡐拙稿󰡑나 󰡐筆者󰡑로 표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표기해 준다.
→南基鶴, 「蒙古襲來以後の日本と東アジア」 『蒙古襲來と鎌倉幕府』(京都, 臨川書店, 1996). (○)
→拙稿, 「蒙古襲來以後の日本と東アジア」 『蒙古襲來と鎌倉幕府』(京都, 臨川書店, 1996). (×)

17. 그 밖의 사항은 원칙적으로 『역사학보』의 관례에 따른다.


III. 인용 방식

1. 모든 인용문(漢文포함)은 논리전개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본문 속에서 줄을 바꾸지 않고 잇달아 이어지는 인용문은 겹따옴표(“ ”)로 묶는다. 내용 註 속의 인용문도 겹따옴표로 묶는다.

3. 겹따옴표로 묶인 인용문 안의 인용문은 홑따옴표로 묶는다.

4. 문장을 이루지 않는 단어나 구절의 인용문은 홑따옴표(‘ ’)로 묶으며, 인용자에 의해 강조되거나 변형된 인용구는 방점 또는 이탤릭체, 고딕체로 별도 처리한다. 단, 강조의 경우는 한 문장 이내의 범위에서 별도표시를 하도록 한다.

5. 본문 속에서 줄을 바꾸게 되는 긴 인용문은 한 줄을 띄우고 본문보다 한 포인트 글자크기를 줄여서 구분한다. 그리고 앞뒤로 각각 한줄 씩을 띄우고 왼쪽의 여백도 한 칸 들여쓰기로 한다.

6. 모든 종류의 인용문은 그 출처를 밝히고 쪽수까지 제시해야 한다. 재인용의 경우 原典과 인용서를 최대한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7. 인용문 내에서는 마침표를 사용할 수 없다.
→ 伊川선생은 “顔回야말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이다.”라고 했으니…… (×)
→ 司馬遷은 “子貢만이 三年喪을 더하였다”고 하였다. (○)

8. 그 밖의 사항은 원칙적으로 『역사학보』의 관례에 따른다.


Ⅳ. 참고문헌 작성 및 표기방식

1. 참고문헌은 원칙적으로 본문에서 인용한 저서와 논문으로 한정한다.

2. 단행본과 일반논문 구분 없이 각 논저의 작성언어를 기준으로 한국어 저작과 외국어 저작을 구분하여 작성한다.

3. 참고문헌 배열순서는 한국어 논저의 경우 저자 가나다순으로 한다. 일본인, 중국인의 이름은 한자의 한국식 발음 가나다순을 기준으로 한다. 서양서의 경우 저자 성의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며, 기타 언어는 각 언어별로 관례를 따르도록 한다.

4. 동일 저자의 같은 연도 논저는 a, b 등으로 구분한다(예: 홍길동 2001a; 홍길동 2001b).

5. 모든 서명은 다음의 일반적인 예에 따라 표기한다. 또한 발행지에 대한 지역 정보를 부기하되, 국내도서의 경우 생략한다.

◎ 일반적인 표기순서
․ 동양서: 저자, 「논문명」 『서명』(간행지역, 출판사, 연도).
․ 서양서: 저자, “논문명”, 서명 (간행지역, 출판사, 연도).

  • (1) 사료
  • (2) 연구서 및 논문
  • (1) 일반단행본
    → 한영우, 『한국민족주의역사학』(서울, 일조각, 1994).
    → 小林 多加士, 『海のアジア史-諸文明の󰡐世界=經濟󰡑』(東京, 藤原書店, 1997).
    → Benjamin I. Schwarz, The World of Thought in Ancient China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198
  • (2) 단행본 내의 논문
    → 노중국, 「삼국의 통치체제」 『한국사』 3(서울, 한길사, 1994).
    → Jing-shen Tao, “Struggles for Legitimacy”, Two Sons of Heaven (Arizona, The University of Arizona Press, 1988).
  • (3) 정기간행물
    → 김기섭, 「신라 촌락문서에 보이는 ‘村’의 입지와 개간」 『역사와 경계』 42(부산, 부산경남사학회, 2002. 3).
    → 채미하, 「신라 종묘제의 수용과 그 의미」 『역사학보』 176(서울, 역사학회, 2002).
    → 田村實造, 「均田法の系譜―均田法と計口受田制との關係―」 『史林』45-6(京都, 史學硏究會, 1962).
    → Lee, Hai-soon, “Sijo Revival”,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Vol.3 (Seoul, Institute of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1990).
  • (4) 인터넷 자료
    → 홍길동 2005, “조선의 대외관계,” http://taejon.ac.kr/kildong/kk0101.html (검색일: 2008년 1월 5일).

6. 그 밖의 사항은 원칙적으로 『역사학보』의 관례에 따른다.